이제 15개월을 접어드는 제 아들과 저는 매일전화를 하고 종종 화상통화를 하곤 합니다. 물론 아이가 직접 전화를 받고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엄마의 말에 의하면 전화로 들리는 제 목소리를 무척 반가워 한답니다.
그런 아들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화를 받으면서 전화기 뒤를 갸우뚱 갸우뚱 하며 살펴봤습니다. Tv를 볼때도 tv뒤를 역시 갸우뚱거리며 살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살이(?)를 좀 한 까닭 일까요
이와 같은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며 '바보'라든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저 아이의 순수함이라고 생각하고 귀엽게 받아넘겨줍니다.
우리의 믿음과 인생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처음에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은혜로 시작하는 새로운 삶(거듭남)의 시작은 마치 저의 15개월된 아들과 같습니다. 전화기에서 소리가 나면 그 안에 아빠가 들어있고 tv에서 사람이 나오면 tv 뒤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겁니다. 의심없이 그저 보는대로 믿습니다. 부끄럼도 의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가고 소위말해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우리는 성장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을 지키는것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 갑니다.
배운 지식과 경험대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잣대 삼아 판단합니다. 우리의 경험안에 하나님을 우겨 넣습니다. 영원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역사와 우주의 티끌만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그 분을 제한합니다.
순전한 믿음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조차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을 가고 고난을 자처하는 것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진리를 선포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법으로 맞서는 일이-
아들은 아빠의 목소리가 반가울 뿐입니다. 반가워서.보고 싶을뿐입니다. 들리는 목소릴 향해 그저 활짝 웃습니다. 아빠니까요. 소리가 어떻게 나고 전달이 되는지 분석하고 원리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말씀들이 내것이 되지 않기를 소원해 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말씀이 내안에 그저 심겨지고 나에게서 나오는 어떤 양분-그저 독 뿐인-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햇살과 물과 양분으로만 자라 그것이 나를 채우고 넘치기를. 나의 노력으로 밀씀을 해석하고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날선 검과 같은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나를 통해 흘러가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